나는 선례를 정의한 적이 없었다

이 문서는 효능 논문을 보고 승인을 예상했다가 틀린 경험에서, 투자 판단에서 말하는 "비슷한 일"이 정의된 적 없다는 의문을 꺼낸 연재의 1편이다.

이 글은 결론을 내리는 글이 아니다. 틀린 뒤에 생긴 의문을 기록하고, 그 의문을 풀어 가는 연재의 시작이다. 아직 답이 없는 곳은 답이 없다고 적었다.

효능이 확인됐는데 승인이 아니었다

2025년 11월 27일, HLB가 FDA 승인을 기다리는 간암 병용 요법(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의 임상 3상 CARES-310 최종 분석이 나왔다. 효능이 최종 분석에서도 확인됐다. 나는 이 논문을 읽고 이어질 재제출은 좋게 나올 거라고 판단했다.

2026년 7월 9일, FDA의 세 번째 보완요구서한이 나왔다. 원인은 효능이 아니라 병용 약을 만드는 중국 제약사 항서제약의 제조 공정(CMC)이었다. 앞선 두 번의 서한도 원인이 제조였다.

내가 제조 측면을 아예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앞선 두 번의 서한이 제조 때문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AI 도구들이 CMC는 흔한 원인이고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약의 본질인 효능이 최상위권으로 입증되었다는 소식에 무게를 두었고, 정신이 그 사실로 좁혀져 있었다. 그리고 HLB와 계열사의 유상증자나 재무 구조는 보지 않았다. 서한이 나오면 재무에 어떤 타격이 오는지, 다음 신청까지 버틸 수 있는 구조인지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틀린 것 자체는 괜찮다. 투자 판단은 자주 틀린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틀린 방향 때문이다. 내가 믿은 근거인 효능은 틀리지 않았다. 효능은 실제로 입증됐다. 틀린 것은 제조를 낮게 본 판단이었고, 낮춘 근거는 내가 사례로 확인하지 않은 한 문장이었다. AI 도구의 말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확인할 사례를 찾지 않고 판단에 넣은 쪽은 나다.

그래서 "왜 틀렸지"를 따라가다 보니, 처음 판단 속에 "비슷한 일이 전에 어떻게 됐나"를 떠올리는 과정이 들어 있었는데, 그 "비슷한 일"을 한 번도 정의해 본 적이 없다는 데 닿았다.

내 판단 안에는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를 그대로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되짚어 보니 판단은 두 문장 위에 서 있었다.

  • "효능이 최상위권으로 입증된 약이니 다음 신청은 좋게 나온다"
  • "CMC는 흔한 지적이고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두 문장 모두 과거 사건들을 모아 놓고, 그 결말이 대체로 그랬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첫째는 내 머릿속의 비슷한 일에서, 둘째는 AI 도구의 답에서 왔다. 그러니 이 판단은논문 한 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논문과 비슷한 일에 대한 두 문장을 합쳐서 나온 것이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보통 이렇게 된다"는 투자 이야기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이런 말을 흔히 선례라고 부르고, 이 연재에서도 이 이름을 쓴다. 나는 이 말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 걸린 건 "좋게 나온다"와 "흔하고 해소된다"다. 두 말에는 모두 비율이 들어있다. 몇 건 중 몇 건이 그랬는지 나는 센 적이 없고, 둘째 문장은 누가 센 것인지도 모른다. 확신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세어 보지 않은 느낌이었다. 모르는 것은 이것이다. 내 머릿속 묶음에 실제로 몇 건이 있었고 그중 몇 건이 그랬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문장을 시험하니 질문이 줄줄이 나왔다

두 문장을 하나씩 시험해 보면, 내가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나온다.

  • 어떤 약들인가. 효능이 입증된 약 가운데 재제출까지 간 약, 제조 지적을 받은 신청을 나는 몇 건이나 알고 있었나. 기억나는 몇 건인가, 찾아본 몇 건인가
  • 이 약과 어디가 닮았나. 효능이 입증됐다는 점만 닮았다면 닮은 것은 한 면뿐이다. 이 신청은 병용이고, 구성 약 하나를 해외 제조사가 만든다. 그리고 이 신청 자신이 이미 두 번 제조로 서한을 받았다. 그 면은 비슷한 일 속에 들어 있었나
  • 그 결말은 어떻게 알았나. 기억에 남는 사례는 크게 보도된 쪽일 수 있다. 승인된 사례가 더 기억에 남는지, 조용히 보류된 사례를 내가 알 길이 있었는지 모른다
  • 그 결말을 언제 알 수 있었나. 내가 아는 결말은 지금 아는 결말이다. 비슷한 일이 있던 그때 그 시점에서는 결말을 몰랐을 수 있다
  • 근거가 있나. 그 사례들은 어디에 적혀 있고, 누가 확인할 수 있나

두 문장 안에 같은 질문 다섯 개가 숨어 있었다. 이 가운데 나는 하나도 답하지 않고 판단을 냈다.

특히 둘째 문장에는 가까운 시험대가 있었다. 이 신청 자신이 이미 두 번 같은 이유로 서한을 받았다. "제조는 흔하고 풀린다"는 말은, 같은 신청이 제조 때문에 두 번 막히고도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시험해 봤어야 했다. 나는 시험하지 않았다. 질문 하나하나는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질문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일이었다. 문장이 자연스러우면 질문이 보이지 않는다. 이 다섯이 전부인지도 나는 모른다. 다음 편에서 다른 분야가 같은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며 맞춰 본다.

효능 근거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었나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이 점이다. 논문이 말해 준 것은 효능이다. 그런데 이번 재제출에서 FDA가 제시한 지적 사항은 제조였다. 같은 신청에서 결말을 가르는 쪽이 논문이 다룬 쪽과 다르면, 아무리 좋은 논문도 그 질문의 답이 되지 못한다.

내가 놓친 것은 논문의 질이 아니라 논문과 질문의 관계였다. 효능 논문은 효능이 쟁점일 때는 강한 근거다. 쟁점이 제조일 때는 직접 답이 되지 못한다. 다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효능이 입증됐다는 사실은 이번 서한의 원인이 효능일 가능성을 낮춘다. 그것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지워 준 것이지, 승인 가능성이 올라갔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지워진 하나를 승인 쪽 근거로 읽었다.

그리고 논문이 나온 2025년 11월부터 서한이 나온 2026년 7월 사이에 제조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그때도 찾아보지 않았다.

제조가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앞선 두 번의 서한이 모두 제조였다. 알고 있었는데 무게를 낮춘 것이다. 낮춘 근거는 AI 도구가 해 준 한 문장이었다. 모르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그 사이에 제조사 쪽 소식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때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나와 있었는지다.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더 큰 질문이다. 알고 있던 가능성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줄지, 나는 무엇으로 정했어야 했나. AI의 한 문장 대신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나. 나는 이 정도가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제조소의 상태는 서한이 아니어도 회사가 낸 정보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재가 풀어 보려는 것이 이 질문이다.

그래서 이 연재에서 하려는 것

이 틀림을 한 번의 실수로만 두면 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틀린다. 그래서 질문을 앞으로 당겨 보기로 했다. "비슷한 일"이란 정확히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 하나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쓴다.

  1. 의문: 나는 왜 비슷한 일을 정의한 적이 없었나(이 글)
  2. 조사: 다른 분야는 선례를 어떻게 다루나
  3. 생각: 무엇이 선례이고 무엇이 아닌가
  4. 생각과 설계: 결말은 어디에 있고, 언제부터 알 수 있나
  5. 설계: 무엇이 닮아야 닮은 것이고, 판단의 단위는 무엇인가
  6. 적용: 이 정의를 HLB에 대 보니

나는 개인 투자 판단을 돕는 선례 기반 리스크 분석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고, 이 질문은 그 프로그램의 설계 중심에 있다. 하지만 이 연재는 프로그램의 설명서가 아니다. 프로그램은 질문에 답해 보는 실험대일 뿐이고, 글의 중심은 질문이다.

정리

답은 아직 없다. 대신 하나만 바꾸려고 한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전에 있었다"고 말하기 전에 세 줄을 적는다.

  • 무엇이 비슷한가. 닮은 면을 구체적으로
  • 그 일의 결말을 언제 알 수 있었나. 그때 그 시점에서
  • 무엇이 비슷하지 않은가. 닮지 않은 면을 최소 하나

세 줄이 적히지 않으면 그 말은 아직 선례가 아니라 느낌이다.

"CMC는 흔하고 해소된다"는 말을 들은 날 이 세 줄을 적었다면, 첫 줄에서 막혔을 것이다. 어떤 사례들을 말하는지, 그 사례들이 이 약과 무엇이 닮았는지 적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이 약 자신이 이미 두 번 제조로 막혔다는 것이 닮지 않은 면으로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 질문을 오래 다뤄 온 다른 분야를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