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지 않은 면을 이미 찾고 있었다
이 문서는 법, 정보 분석, 의학이 선례를 쓰는 방식을 조사하고, 그 조사가 1편의 질문에서 내가 어디를 다시 보게 했는지 적은 연재의 2편이다.
이 글은 조사 보고서가 아니다. 조사하다 걸린 곳과 아직 모르는 것을 함께 적는다.
세 줄이 내가 처음 만든 방법은 아닐 것 같았다
1편 끝에서 "비슷한 일이 전에 있었다"고 말하기 전에 적을 세 줄을 정했다.
- 무엇이 비슷한가
- 결말을 언제 알 수 있었나
- 무엇이 비슷하지 않은가
1편을 작성하고 잠시 유트브에서 변호사가 판례를 보고 제시된 사건을 분석하는 영상을 보고, 이런 걱정을 나만 하고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는 매일 판례로 판결하고, 정보 분석가는 역사 사례로 정책을 평가하고, 의사는 다른 환자 집단의 시험 결과로 지금 환자를 치료한다. 그들은 "비슷하다"를 믿을 만한 말로 만드는 방법을 이미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법, 정보 분석, 의학을 자세히 보고, 예측과 금융에서 이름이 붙은 문제는 짧게 모았다. 나는 이 분야들의 전공자가 아니다. 공개된 논문, 개요, 해설을 읽었다. 법은 사전 수준의 설명이고, 의학의 GRADE는 논문 요약만 읽었고 분야 전공과 같은 내용들은 AI를 통해 해석하여 읽었다. 틀린 곳이 있으면 고치겠다.
분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법은 판례나 선례, 정보 분석은 유추(비슷한 과거 사건에 견주어 판단하는 일), 예측은 비슷한 과거 사례의 집단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따로 말하지 않으면 모두 선례라고 부른다.
법은 판결의 일부만 따르고, 그 범위는 쓰는 법원이 정한다
영미법의 선례구속의 원칙(stare decisis)은 앞선 판결을 따르라는 원칙이다. 처음에는 판결 전체를 따르는 줄 알았는데 범위가 좁았다. 구속력은 결론에 꼭 필요했던 법적 판단인 판결이유(holding, 영국식으로 ratio decidendi)에만 있고, 판결문의 다른 말인 방론(obiter dicta)은 참고로만 인용된다.
이 판단은 사실관계에 묶여 있다. 앞선 판결의 근거가 된 사실이 지금 사건에 없거나 중요하게 다르면, 법원은 그 선례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을 선례와 구별한다(distinguish)고 한다. 닮지 않은 면을 찾아 선례를 물리는 일이 법에서 인정되는 방법이다.
무엇이 판결이유인지는 판결문에 적혀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뒤에 비슷한 사건을 맡은 법원이 앞선 판결을 읽고 "결론에 필요했던 부분은 이것이고 나머지는 곁가지다"라고 정한다. 판결을 낸 법원이 스스로 밝히는 경우도 있지만, 뒤의 법원이 다르게 읽을 수 있다.
법에는 "무엇이 결론을 가른 이유였나"를 정해 주는 법원이 있다. 투자에는 그런 주체가 없다. 보완요구서한에 지적 사항이 적혀 있어도, 그중 무엇이 결말을 가른 이유인지는 읽는 사람이 재구성한다. 그렇다면 사건 하나를 선례로 쓰는 순간 나는 법원 역할을 맡아 "이 결말은 이것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 주장에는 근거가 붙어야 하고, 1편에서 나는 이 일을 하지 않았다. 효능이 입증됐다는 닮음이 있어도 그것이 결말을 가른 이유가 아니었다면 그 닮음은 결말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재구성은 인과 증명이 아니다. 서한에 적힌 지적과 그 뒤 사건 기록에서 읽어 낸 해석이고, 제조에 문제가 없었다면 승인됐을지는 확인할 수 없다. 모르는 것은 이것이다. 법원이 없는 곳에서 "결말을 가른 이유"를 정하는 일을 누가 어떤 근거로 맡을 수 있나.
법 인공지능은 선례를 논쟁의 재료로 썼다
1980년대 에드위나 리슬랜드(Edwina Rissland)와 케빈 애슐리(Kevin Ashley)가 만든 HYPO는 미국 영업비밀 사건에서 과거 판례를 찾아 논거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사건을 관련 측면(dimension)별로 보고, 선례를 세 단계 논쟁으로 쓴다.
- 한쪽이 원하는 결과를 가진 과거 사건 가운데 지금 사건과 가장 많은 측면에서 닮은 것을 인용한다
- 상대편이 반례를 댄다. 지금 사건과 같거나 더 많은 측면에서 닮았는데 결과가 반대인 과거 사건이다. 또는 지금 사건에는 있고 선례에는 없는 측면을 짚어 구별한다
- 처음 인용한 편이 그 반박을 다시 구별하거나 다른 측면을 댄다
선례가 한 사람이 혼자 쓰는 근거가 아니라 두 편이 서로 공격하는 재료로 설계된 것이다. 후속 시스템 CATO는 법학 학생에게 선례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사례기반추론(case-based reasoning)을 정리한 아모트와 플라사(Aamodt, Plaza, 1994)의 네 단계(찾고, 쓰고, 고치고, 남긴다)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는 것은 첫 단계일 뿐이고, 두 사례의 차이는 해법을 고치는 단계에서 다뤄진다.
투자 판단에는 상대편이 없다. 내 결론에 불리한 반례는 내가 대신 찾아야 하는데, 내 결론에 맞는 사례가 먼저 떠오를 것이라고 본다. 반례 찾기를 의지에 맡기면 빠진다. 그래서 "반례" 칸을 판단 양식에 미리 두고, "찾아봤으나 없음"과 "찾아보지 않음"을 구별해서 적는 쪽이 현실적이다. 모르는 것은 이것이다. 칸을 만들어 두어도 내가 반례를 정말 찾아낼 수 있는지, 그 사례를 어디서 찾는지는 아직 모른다.
정보 분석은 눈에 띄는 닮음을 의심한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학술지 Studies in Intelligence에 2026년 실린 논문(핸디, Handy)은 유추를 잘못 쓴 사례를 모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트루먼은 1930년대 만주, 에티오피아, 오스트리아 합병을 불러냈다. 침략에 대응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온다는 교훈이었다. 논문은 덜 선명하지만 믿을 만한 다른 선례가 빠졌다고 지적한다. 1960년대 중반에는 존슨 행정부가 한국전쟁을 베트남에 견주었는데, 논문은 이 대목을 융 퐁 콩(Yuen Foong Khong)의 연구에서 가져왔다.
논문이 인용한 중앙정보국 방법론 전문가 리처즈 호이어(Richards Heuer)의 요지는, 선례가 너무 선명하면 처음부터 사고를 지배해 현재를 그 닮음으로만 보게 한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를 선명함 편향(vividness bias)이라고 부른다.
논문이 다루는 해법 가운데 둘을 적는다. 하나는 닐 노이슈타트(Neustadt)와 어니스트 메이(May)가 제안한, 쟁점의 요소를 알려진 것, 불분명한 것, 가정한 것으로 먼저 나누는 방법이다. 이 책은 직접 보지 못했고 논문의 소개로만 적는다. 다른 하나는 닮은 점과 다른 점을 표로 적는 방법이다. 논문은 1964년 조지 볼(George Ball) 국무차관이 존슨에게 보낸 메모에서 한국전쟁이 베트남에 맞는지 따진 내용을 표로 옮겨 보인다. 결정적인 닮은 요소가 모자라 쓸 만한 유추가 못 된다는 결론이다.
1편에서 나는 "효능이 입증됐다"는 알려진 것으로, "제조는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는 가정으로 나눠 적지 않았다. 그날 내 정신은 가장 선명한 사실인 효능으로 좁혀져 있었고, 그 상태에서는 가정이 가정으로 보이지 않고 배경이 된다. 표를 썼다면 이 약과 내가 떠올린 약들을 요소별(효능, 제조, 병용, 제조사의 위치)로 나란히 적었을 것이고, 내가 아는 것이 없는 칸이 눈에 보였을 것이다. 모르는 것은 이것이다. 요소 목록 자체를 내가 빠뜨리지 않고 채울 수 있는지, 목록에 없는 요소는 어떻게 알아채는지는 아직 모른다.
의학은 근거의 질과 질문과의 일치를 따로 잰다
근거 확실성 등급 체계인 GRADE의 2025년 지침(Core GRADE 5, BMJ)은 비직접성(indirectness)을 다룬다. 요약으로 확인한 절차는 이렇다.
- 먼저 지침이 답하려는 질문을 대상 환자, 중재, 비교, 결과 네 칸(PICO)으로 적는다
- 찾은 연구의 네 칸이 이 질문과 얼마나 다른지 본다
- 크게 다르면 간접 근거로 보고 근거의 확실성을 낮춘다
- 차이마다 효과 크기가 달라질 가능성을 따져, 가능성이 클수록 더 낮춘다
핵심은 연구의 질(설계가 좋은가)과 연구와 질문의 일치를 따로 잰다는 점이다. 잘 설계된 시험도 내 질문과 결과 칸이 다르면 확실성이 깎인다.
1편의 상황에 놓으면 효능 논문은 "효능"을 잰 연구다. 내가 답하려던 질문의 결과는 "FDA가 승인하는가"였고, 그 결과를 가른 것은 제조였다. 결과 칸이 다른 근거였다. 이 구분이 마음에 든 이유는 "논문이 좋은가"와 "논문이 이 질문에 답하는가"를 떼어 놓기 때문이다. 나는 1편에서 둘을 하나로 읽었다. 다만 GRADE는 임상 지침을 만드는 도구이고, 투자에는 PICO 같은 네 칸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틀이 아니라 순서다. 근거를 보기 전에 질문의 결과를 먼저 적고, 근거가 그 결과를 잰 것인지 대조한다. 모르는 것은 이 대조가 투자에서 어디까지 가능하냐는 점이다.
이름이 이미 있던 세 가지
세 가지는 짧게 적는다. 각각 1편의 질문 하나와 닿아 있다.
집단 고르기. 카너먼과 로발로(Kahneman, Lovallo)는 1993년 논문에서 지금 계획의 세부에서 예측을 끌어내는 내부 관점(inside view)과 비슷한 과거 사례들의 결과에서 끌어내는 외부 관점(outside view)을 나눴다. 내부 관점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예측을 낳는다고 했다. 이를 실무로 옮긴 참조 집단 예측(reference class forecasting)은 비슷한 과거 사례의 집단을 정하고, 그 집단에서 값의 분포를 만들고, 지금 사례를 그 분포 위에 놓는다. 알려진 문제는 집단을 어떻게 고르느냐다. 심리학 교과서를 쓰는 시간을 예측한다면 모든 책, 모든 교과서, 심리학 교과서 가운데 어느 집단이냐에 따라 분포가 다를 수 있다.
걸러진 사례. 생존자 편향은 선택 과정을 통과한 대상에만 집중해서 생기는 오류다. 설명에 자주 나오는 인물이 2차대전의 통계학자 아브라함 발트(Abraham Wald)다. 널리 퍼진 일화는 판본마다 세부가 달라, 그가 돌아온 비행기의 손상 위치로 취약한 부분을 추정하는 방법을 만들었다는 정도까지만 쓴다. 학술 출처는 맨젤과 사마니에고(Mangel, Samaniego)의 1984년 논문이다.
미래의 정보. 금융 백테스트의 룩어헤드 편향(look-ahead bias)은 그때 쓸 수 없었던 정보를 과거 판단에 쓰는 오류다. 나중에 정정된 재무제표 숫자로 과거를 돌리는 것이 예다. 막는 방법은 값마다 공개된 날짜를 붙인 시점 기준 자료(point-in-time data)다. 이것은 숫자 자료의 이야기다. 이번에 찾아본 범위에서는 보완요구서한이나 승인 같은 사건의 결말 날짜를 이렇게 다루는 논의를 찾지 못했다. 이 부분은 3편과 4편에서 다룬다.
세 가지를 1편에 대 보면 "어떤 약들인가", "결말을 어떻게 알았나", "언제 알 수 있었나"에 하나씩 닿는다. HLB의 신청은 "효능이 입증된 약의 재제출"이기도 하고 "병용 신청"이기도 하고 "해외 제조소에 의존하는 신청"이기도 하다. 어느 집단에서 보느냐에 따라 승인 비율이 다를 수 있고, 나는 그 비율을 모른다. 집단을 고르는 일이 결국 "무엇이 비슷한가"를 정하는 일이라는 점이 이 조사에서 가장 크게 남았다. 다음 편의 출발점이 이것이다.
정리
1편의 다섯 질문에 대해 찾은 것을 모으면 이렇다.
| 1편의 질문 | 찾은 것 |
|---|---|
| 어떤 약들인가 | 참조 집단을 먼저 정해야 하고, 어떻게 고르느냐가 풀리지 않은 문제다(예측) |
| 어디가 닮았나 | 결론을 가른 이유와 사실이 닮아야 한다(법). 측면별로 본다(HYPO). 눈에 띄는 닮음을 의심한다(정보 분석) |
| 그 결말은 어떻게 알았나 | 걸러진 사례만 본다는 점을 의심한다(생존자 편향) |
| 그 결말을 언제 알 수 있었나 | 시점 기준 자료(금융). 사건 쪽은 못 찾음 |
| 근거가 있나 | 법은 인용으로, 의학은 확실성 등급으로 다룬다. 이번에 깊이 보지 못함 |
내가 본 세 분야는 공통점이 하나다. 선례를 쓰는 사람들은 닮은 면을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닮지 않은 면을 찾는 절차를 따로 두었다. 법은 구별과 반례, 정보 분석은 닮은 점과 다른 점의 표, 의학은 비직접성이 그 자리에 있다.
나는 1편에서 닮은 면만 믿었고, 닮지 않은 면을 찾는 일을 내 일로 두지 않았다. 그래서 세 줄에 하나를 더한다. 네 번째 줄은 반례다. 지금 사건과 같거나 더 닮았는데 결말이 반대인 과거 사건을 하나 찾는다. 찾지 못하면 찾지 못했다고 적는다. 찾아보지 않은 것과 찾아봤는데 없는 것은 다른 말이다.
아직 모르는 것은 셋이다.
- 투자에서 "결말을 가른 이유"를 정하는 근거는 무엇이어야 하나
- 사건의 결말 날짜를 다룬 논의가 정말 없는지, 내가 못 찾은 것인지
- 질문과 근거의 일치를 재는 일이 투자에서 어디까지 가능한지
다음 편에서는 이 조사를 바탕으로 정의를 내려 본다. 무엇이 선례이고 무엇이 선례가 아닌지, 세 조건으로 가를 수 있는지다.
참고한 자료
- 아모트와 플라사, 사례기반추론 개관(AI Communications 7(1), 1994): doi
- 벤치캐폰, 차원과 요인으로 본 사례 표현(HYPO와 CATO 설명): PDF
- 핸디, 정보 분석의 유추 추론(Studies in Intelligence 70 No. 3, 2026): PDF
- 카너먼과 로발로, 소심한 선택과 대담한 예측(Management Science 39(1), 1993): 초록
- 참조 집단 예측 개요: 위키백과
- Guyatt 외, Core GRADE 5 간접성 평가(BMJ 389, 2025): doi
- 선례 구속과 구별: 위키백과 선례, 위키백과 ratio decidendi
- 생존자 편향: 위키백과, 맨젤과 사마니에고, 발트의 항공기 생존성 연구(JASA 79(386), 1984): doi
- 룩어헤드 편향과 시점 기준 자료: AnalystPrep 백테스트 문제